참여자 : 박OO
취업컨설턴트 : 강태혁
‘꿈도, 미래도 없이 삶을 살아가리란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허망한 삶일까요? 낯선 환경에서 매일 불안함에 살아가며 ’꿈‘이라는 단어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던 그 때, 취업성공패키지를 소개해준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꿈과 내일을 향해 도전해보세요! 취업과 인생, 그리고 성취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날씨처럼 언제나 함께하는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여러분의 인생 또한 찬란하게 밝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참여자 인터뷰 내용 中 -
편찮으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대신해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 해왔던 그 해 무렵,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국제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꽃다운 나이 21살에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러서 우왕좌왕, 휘청거리기 일쑤였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놀림거리가 되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눈치밖에 볼 수 없는 한 명의 외국인이었습니다. 20여 년간 캄보디아에서의 당당하고 당찬 저의 모습을 한순간에 잊게 할 정도로 제 마음의 문을 열 생각조차 하지 못했죠.
“바로 내 옆에 있는 남편과 결혼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시어머니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지, 이러한 엄마 때문에 곧 태어날 아이에게 상처만 주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으로 인해 복잡하고 불안해진 마음을 표현하고자 노력해봤지만,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과의 소통은 여전히 어렵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녀를 출산하게 되었고 산후조리 후 열심히 집안일에만 전념해오며 스스로 한국어 공부를 해왔던 저는, 문득 ‘꿈’이라는 한국단어에 대한 다중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말과 행동, 사랑, 직업, 성취… 등이 될 수 있음을 말이죠. “이렇게만 있을 수는 없겠어! 나도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어!” 혼잣말로 되 뇌이던 그 때, 다문화센터에서 가정방문 상담을 위해 일정을 묻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지금의 상담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죠. 선생님은 다문화센터 직원임을 소개하면서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시작으로 30분가량의 상담을 진행하였고, 첫 만남이자 상담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가정방문 이후에도 끊임없이 전화해주어, 제가 생각하는 꿈과 목표에 대해 물어봐주셨고 저를 항상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비가 오던 날, 집안일을 마무리 짓고 일자리에 대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위해 상담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다른 실무자 선생님은 “그 선생님은 일을 그만두셨다”는 말 뿐이었고 저는, 그렇게 선생님과의 연락이 영영 닿지 않는 줄만 알았습니다.
▣ 기회는 항상 가까이에 있다.
낯설고도 어색한 환경 속에서 내‘일’이라는 보물을 찾는 것이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남편과 가족, 친구들에게 취업에 대한 도움을 요청해보아도 “글쎄?, 요즘에는 한국 사람들도 취업이 어렵다고 하던데?”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고 나의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한국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도 외국인이 취업하는 것은 어려우니 집에서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시어머니의 위로 섞인 권유가 저에게 위로보다는 자신감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고, 주변지인들 조차도 나의 꿈의 시작인 내‘일’을 찾는 것을 말릴 뿐이었습니다.
비가 온 후 날씨가 개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 때 쯤,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다문화가족들과 함께 하는 체육대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열심히 운동을 하던 중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선물을 나누어주며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세요!“라는 말을 외치면서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시원하게 소리치던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상담 선생님이었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곤 취업성공패키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저와 같은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취업상담과 각종 취업지원서비스를 통해 취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내용이었고 이와 같은 내용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친절히 설명해주셔서 결국,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내’일‘에 도달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은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였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었습니다.
▣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달걀프라이가 된다.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그 날, 상담사 선생님은 초기상담을 진행하면서 한국에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의 취업현황과 직무내용, 경력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주셨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답변해드렸습니다. 또한, 3번 정도의 상담을 통해 한국어가 서툴 수 있는 저에게 심리검사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실시하였고 이 모든 내용을 토대로 저에게 맞는 직업과 그에 대한 직업정보를 목록으로 만들어 정리해주셨습니다.
가장 먼저, 저의 구직준비도 분석을 통해 대인관계활용과 구직정보수집, 자아존중감 등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셨고, 지금까지의 경력과 연관 지으면서 강점을 살려 어울릴 수 있는 직업인 헤어미용사, 생산직, 무역사무원 등의 직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취업지원계획서(IAP)를 완성하고 나니 저에게 어울리는 내‘일’을 찾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상담사 선생님은 해당 계획서를 통해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2단계 참여를 통한 직업훈련을 참여할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셨고, 그에 대한 정보 발굴 방법을 알려주시며 직접 탐색해볼 수 있도록 권유해주셨습니다. 또한, 3단계 참여에 따라 저에게 구직활동 실시에 필요한 방법 및 요령안내,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 과제를 부여해주어 제가 스스로 상황과 해결방안을 찾아나갈 수 있게끔 천천히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끔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인 상담이 진행될수록 굳게 닫혀있을 것만 같았던 취업의 문은 서서히 열려가는 것 같았고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가면서 내‘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 것이 제가 한국에 입국해 처음으로 ‘스스로 노력해 얻어낸 성취감’이었을 것입니다.
▣ 취업의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고 노력이라는 길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다.
상담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2단계인 직업훈련에 참여하여 최종적으로 취업을 꾀하고자하였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집안일과 자녀양육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어머니 또한 집을 오랫동안 비울 것이라면 가정에 소홀할 수 있다며 더 이상의 상담진행을 반대하셨고 저는 그렇게 멈춰서야 할 위기에 놓였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사 선생님은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며 좌절하고 있던 저를 격려해주셨고, 3단계 참여를 통해 구직활동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시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초안을 만들어 다음 상담 시에 함께 검토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3단계 참여를 하게 되었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펜을 집어 들었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단어들과 나 자신에 대한 장문의 소개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입국했을 때의 나처럼 종이 위의 글씨들이 우왕좌왕 휘청이던 그 때, 도움을 요청하고자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사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스스로 용기를 낸 저를, 상담사 선생님이 격려해 주시면서 제가 쓴 이력서를 검토하여 알아듣기 쉽게 수정사항을 안내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여러 번의 상담과 수정 끝에, 드디어 저의 1호 이력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려울 수 있는 구직활동도 알려주신 요령에 따라 직접 실시해보면서 직업정보를 발굴해보고, 저의 서툰 이력서를 제출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내 생의 두 번째 성취감에 흠뻑 빠질 때쯤, 상담사 선생님의 취업알선으로 인한 이력서 제출을 권유받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화장품 제조업 회사에 입사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소통이 서툴 수 있는 저를 위해 시어머니와의 직접 통화로 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해주셨고 저에 대한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며칠 뒤, 이력서를 제출한 곳에서 면접에 대한 연락을 받게 되었고 면접을 보러 가기 하루 전 날, 상담사 선생님과 모의면접을 진행하는 등의 도움을 통해 최종적으로 합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취업성공의 날이었습니다.
취업 후에는, 사후관리 상담을 진행하면서 근무환경과 애로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하여 상담해 주셨고, 최근에는 취업에 따른 취업성공수당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지쳐 좌절만하고 있던 나를 위해 자신의 일처럼 노력해주시고, 제가 스스로 노력할 수 있게끔 응원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연치 않게 취업성공패키지를 접하게 되고,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 노력의 결실을 맺은 지금! 제 스스로가 좌절하지 않고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적응해나가면서 취업이라는 꿈을 성취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입국해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결혼이주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써주신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사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취업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언제나 열려있는 취업성공패키지와 함께라면 내‘일’의 날씨가 맑아질 것입니다.
참여자 : 박OO
취업컨설턴트 : 강태혁
‘꿈도, 미래도 없이 삶을 살아가리란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허망한 삶일까요? 낯선 환경에서 매일 불안함에 살아가며 ’꿈‘이라는 단어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던 그 때, 취업성공패키지를 소개해준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꿈과 내일을 향해 도전해보세요! 취업과 인생, 그리고 성취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날씨처럼 언제나 함께하는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여러분의 인생 또한 찬란하게 밝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참여자 인터뷰 내용 中 -
편찮으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대신해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 해왔던 그 해 무렵,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국제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꽃다운 나이 21살에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러서 우왕좌왕, 휘청거리기 일쑤였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놀림거리가 되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눈치밖에 볼 수 없는 한 명의 외국인이었습니다. 20여 년간 캄보디아에서의 당당하고 당찬 저의 모습을 한순간에 잊게 할 정도로 제 마음의 문을 열 생각조차 하지 못했죠.
“바로 내 옆에 있는 남편과 결혼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시어머니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지, 이러한 엄마 때문에 곧 태어날 아이에게 상처만 주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으로 인해 복잡하고 불안해진 마음을 표현하고자 노력해봤지만,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과의 소통은 여전히 어렵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녀를 출산하게 되었고 산후조리 후 열심히 집안일에만 전념해오며 스스로 한국어 공부를 해왔던 저는, 문득 ‘꿈’이라는 한국단어에 대한 다중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말과 행동, 사랑, 직업, 성취… 등이 될 수 있음을 말이죠. “이렇게만 있을 수는 없겠어! 나도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어!” 혼잣말로 되 뇌이던 그 때, 다문화센터에서 가정방문 상담을 위해 일정을 묻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것이 지금의 상담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죠. 선생님은 다문화센터 직원임을 소개하면서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시작으로 30분가량의 상담을 진행하였고, 첫 만남이자 상담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가정방문 이후에도 끊임없이 전화해주어, 제가 생각하는 꿈과 목표에 대해 물어봐주셨고 저를 항상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비가 오던 날, 집안일을 마무리 짓고 일자리에 대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위해 상담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다른 실무자 선생님은 “그 선생님은 일을 그만두셨다”는 말 뿐이었고 저는, 그렇게 선생님과의 연락이 영영 닿지 않는 줄만 알았습니다.
▣ 기회는 항상 가까이에 있다.
낯설고도 어색한 환경 속에서 내‘일’이라는 보물을 찾는 것이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남편과 가족, 친구들에게 취업에 대한 도움을 요청해보아도 “글쎄?, 요즘에는 한국 사람들도 취업이 어렵다고 하던데?”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고 나의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한국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도 외국인이 취업하는 것은 어려우니 집에서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시어머니의 위로 섞인 권유가 저에게 위로보다는 자신감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고, 주변지인들 조차도 나의 꿈의 시작인 내‘일’을 찾는 것을 말릴 뿐이었습니다.
비가 온 후 날씨가 개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 때 쯤,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같이 다문화가족들과 함께 하는 체육대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열심히 운동을 하던 중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선물을 나누어주며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세요!“라는 말을 외치면서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시원하게 소리치던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상담 선생님이었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곤 취업성공패키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저와 같은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취업상담과 각종 취업지원서비스를 통해 취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내용이었고 이와 같은 내용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친절히 설명해주셔서 결국,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내’일‘에 도달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은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였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었습니다.
▣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달걀프라이가 된다.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그 날, 상담사 선생님은 초기상담을 진행하면서 한국에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의 취업현황과 직무내용, 경력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주셨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답변해드렸습니다. 또한, 3번 정도의 상담을 통해 한국어가 서툴 수 있는 저에게 심리검사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실시하였고 이 모든 내용을 토대로 저에게 맞는 직업과 그에 대한 직업정보를 목록으로 만들어 정리해주셨습니다.
가장 먼저, 저의 구직준비도 분석을 통해 대인관계활용과 구직정보수집, 자아존중감 등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셨고, 지금까지의 경력과 연관 지으면서 강점을 살려 어울릴 수 있는 직업인 헤어미용사, 생산직, 무역사무원 등의 직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취업지원계획서(IAP)를 완성하고 나니 저에게 어울리는 내‘일’을 찾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상담사 선생님은 해당 계획서를 통해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2단계 참여를 통한 직업훈련을 참여할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셨고, 그에 대한 정보 발굴 방법을 알려주시며 직접 탐색해볼 수 있도록 권유해주셨습니다. 또한, 3단계 참여에 따라 저에게 구직활동 실시에 필요한 방법 및 요령안내,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 과제를 부여해주어 제가 스스로 상황과 해결방안을 찾아나갈 수 있게끔 천천히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끔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인 상담이 진행될수록 굳게 닫혀있을 것만 같았던 취업의 문은 서서히 열려가는 것 같았고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가면서 내‘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 것이 제가 한국에 입국해 처음으로 ‘스스로 노력해 얻어낸 성취감’이었을 것입니다.
▣ 취업의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고 노력이라는 길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다.
상담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2단계인 직업훈련에 참여하여 최종적으로 취업을 꾀하고자하였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집안일과 자녀양육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어머니 또한 집을 오랫동안 비울 것이라면 가정에 소홀할 수 있다며 더 이상의 상담진행을 반대하셨고 저는 그렇게 멈춰서야 할 위기에 놓였었습니다. 하지만 상담사 선생님은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며 좌절하고 있던 저를 격려해주셨고, 3단계 참여를 통해 구직활동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주시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초안을 만들어 다음 상담 시에 함께 검토해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3단계 참여를 하게 되었고, 행동으로 옮기고자 펜을 집어 들었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단어들과 나 자신에 대한 장문의 소개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입국했을 때의 나처럼 종이 위의 글씨들이 우왕좌왕 휘청이던 그 때, 도움을 요청하고자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사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스스로 용기를 낸 저를, 상담사 선생님이 격려해 주시면서 제가 쓴 이력서를 검토하여 알아듣기 쉽게 수정사항을 안내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여러 번의 상담과 수정 끝에, 드디어 저의 1호 이력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려울 수 있는 구직활동도 알려주신 요령에 따라 직접 실시해보면서 직업정보를 발굴해보고, 저의 서툰 이력서를 제출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내 생의 두 번째 성취감에 흠뻑 빠질 때쯤, 상담사 선생님의 취업알선으로 인한 이력서 제출을 권유받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화장품 제조업 회사에 입사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은, 소통이 서툴 수 있는 저를 위해 시어머니와의 직접 통화로 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해주셨고 저에 대한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며칠 뒤, 이력서를 제출한 곳에서 면접에 대한 연락을 받게 되었고 면접을 보러 가기 하루 전 날, 상담사 선생님과 모의면접을 진행하는 등의 도움을 통해 최종적으로 합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취업성공의 날이었습니다.
취업 후에는, 사후관리 상담을 진행하면서 근무환경과 애로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하여 상담해 주셨고, 최근에는 취업에 따른 취업성공수당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지쳐 좌절만하고 있던 나를 위해 자신의 일처럼 노력해주시고, 제가 스스로 노력할 수 있게끔 응원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연치 않게 취업성공패키지를 접하게 되고,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 노력의 결실을 맺은 지금! 제 스스로가 좌절하지 않고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적응해나가면서 취업이라는 꿈을 성취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입국해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결혼이주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써주신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사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취업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언제나 열려있는 취업성공패키지와 함께라면 내‘일’의 날씨가 맑아질 것입니다.